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
서민구 기자 2022-10-28 15:00:51

1980년 5월18일 확대비상계엄령이 내려지던 날 나는 시위 주동자로 전국에 지명 수배됐다. 다행히 그날은 체포되지 않았다. 나는 동료들보다는 좀 늦게 잡혀 대공분실에서 조사받았다. 먼저 조사받은 일부 친구들이 내가 시켜서 어떤 일들을 했다고 진술한 것을 보고 놀랐다. 계속되는 고문으로 지치기도 했지만, 차라리 주동 몇 명이 시위 책임을 떠맡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어지간한 일은 반박하지 않고 넘어갔다. 조사가 끝나던 날 수사관 중 한 명이 담배에 불을 붙여 주며 말했다. “나는 데모꾼과 사상범을 많이 취조했다. 너처럼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하는 사람은 나이에 상관없이 다른 눈으로 본다. 나도 팔자가 사나워 이 일을 하고 너도 때를 잘못 타고 나서 지금 여기에 앉아 있다. 세상은 반드시 변한다. 맛없더라도 주는 밥 꼭꼭 씹어 먹고 견뎌내라.” 석방 이후 학교에 못 나가고 있을 때 나는 상당 기간 두문불출했다. 사람이 두렵고 사람 만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야구공 속의 고무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경식 야구공을 만드는 과정은 이렇다. 고무심(작은 고무공)을 실 감는 기계에 넣고 양모 실로 감는다. 이 작업이 끝나면 이전보다 더 가는 실을 입히는 작업을 한다. 굵은 실로 시작해 점차 가는 실로 바꾸면서 둥근 모양을 다듬어 간다. 마지막으로 가죽을 재단해서 공에 접착하고는 봉제한다. 나는 인간의 본성은 야구공의 고무심과 같고, 교육은 고무심을 감싸는 실과 같다고 생각한다. 한 개인이 타고난 나쁜 본성은 교육이라는 실로 챙챙 감싸두면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극한 상황에서 바깥 가죽을 꿰맨 실밥이 터지고 그 안의 실이 손상되면 고무심은 여지없이 튀어나온다. 그러나 본성(고무심)이 바뀌지 않는다고 해서 교육(실로 감싸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예의 바르면서도 정의롭고 법을 잘 지키는 경향이 있다. 다만 정상적인 상황에서만 그렇다. 직장이 있고, 먹을 것이 있고, 안전할 때 교육(실)은 순기능으로 작용해 나쁜 본성을 억눌러 품위를 유지하게 한다. 사정이 여의찮으면 드러내고 싶지 않은 본성이 여지없이 삐져나온다.

그 깨달음 이후 나는 현실 정치에 발 담그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도 대학을 졸업하고 교편을 잡으면서 교육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 이후에는 정말로 단호하게 현실 문제에서 발을 뺐다. 그 이후의 삶도 순탄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생업에 충실한 것이 내가 선택한 가장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면서 정치적 동물이라 정치를 떠나 삶을 영위하기란 정말 어렵다. 사람마다 적성과 취향이 다르고 현실 참여 방식도 다르다. 나는 현실 정치를 지켜보며 적극적인 관심은 가지지만, 글로 내 견해를 밝히려고 노력해 왔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내게 맞기 때문이다. 현실 정치에 뛰어든 사람을 비판할 생각은 없다. 누군가는 정치를 해야 한다. 잘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진보나 보수, 어느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다. 책 읽고 글 쓰며 나름의 방식과 시선으로 현실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것이 내 적성에 맞아 그렇게 살고 있을 따름이다.

도원결의를 한 대장동 4인방 중 한 명인 유동규 씨가 최근 구치소에서 나와 “의리? 이 세계엔 없어”라고 한 말이 여러 매체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그는 또 “양파가 아무리 껍질이 많아도 까다 보면 속이 나오지 않나. 내가 좀 미련해서 숨길까 생각했는데 그게 오히려 더 다른 속임을 만드는 것 같다. 그냥 법을 믿고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같이 지은 죄는 같이 벌을 받고, 내가 안 한 거는 덮어쓰면 안 된다”라고도 했다. 그걸 이제 알았는가. 모든 것이 정상이고 순탄하게 전개될 때는 도원결의나 의리는 심리적 안정감과 자신감을 주며 상호이익을 위한 방패막이가 될 수 있다. 상황이 나빠지면 조그마한 균열에도 모든 것은 일거에 무너진다. 야구공 안의 고무심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애초에 나쁜 짓을 공모해서는 안 된다. 높이 올라갈수록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법과 정의, 진실에 어긋나는 틈새가 없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라는 성경 구절이 새삼 와 닿는 요즘이다.


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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